Long-Run
그러니까 주원
Joowon

 

아침 9시, 해가 들어올 시간이 아닌데도 스튜디오가 환하다. 아침잠 설치고 온 스탭들의 얼굴에 짜증이 서려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기미가 없다. 그 앞에 주원이 있다. 그에게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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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 있는 패기
스물세 살의 그는 앞치마를 매고 빵 대신 야욕을 만드는 TV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구마준’으로 안방극장을 달궜다. 융통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고, 세상을 갖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 남자가 갖고 싶은 건 안방극장의 인기가 아니었을 텐데도, 쭉쭉 올라가는 시청률만큼 주원의 인기도 높아져 갔다. 사실 신인 배우에게 이런 기회는 거의 로또와 마찬가지다. 자신을 한 방에 각인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원이 작품에 캐스팅되기 전부터 스탭들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신인배우를 써서 혹여나 드라마에 누가 될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그를 강력하게 추천했던 건 <제빵왕 김탁구>의 강은경 작가였다. 그녀는 “하고 싶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하는 그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고, 많은 스탭들의 만류에도 얘 아니면 안 한다는 떼까지 써가며 주원을 캐스팅했다.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났기에 이런 로또를 맞은 거냐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과연 로또를 맞은 건 주원뿐일까? 혜성같이 등장해서 혜성보다 빠르게 지는 신인 배우들은 천지에 널렸다.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내공과 노력이 뒷받침된 준비된 자이다. 주원이 바로 그런 배우였고.

 
# 무대 위에서 갈고 닦은 내공
소년 같은 미소 속에 야성적인 매력이 숨어 있는 마스크. 동생처럼 친근하면서도 웃통을 벗는 순간 남자가 되어버리는 배우 주원. 그의 진가는 뮤지컬 좀 본다 하는 ‘누나’들이 먼저 알아봤다. 탄탄한 발성과 안정적인 연기력,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무대 위에 감칠맛 나게 관객을 들었다 놨다하는 물 만난 고기 같은 주원을 보면 과연 그가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가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종횡무진 할 수 있었던 것도 무대에서 내공을 쌓았던 덕이 크다. 특히 이번에 출연하는 뮤지컬 <고스트>에서는 그간 쌓았던 내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사랑한다는 몰리의 고백에도 시종일관 “동감이야”라고 말하는 눈치 없는 남자 샘은 목숨을 잃고 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되는 캐릭터다. 영혼과의 사랑이라는 초월적인 이야기를 그리는 극에서 그는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을 지닌 남자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전에는 주원의 코미디 연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면 이번 뮤지컬은 그의 코믹 연기만 따로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를 브라운관이 아닌 무대 위에서 먼저 발견한 ‘누나’들의 호외를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 정도로 무대 위의 그는 빛이 났다.    

 
# 열정의 빠르기로 뛰는 심장
코믹 연기를 어쩜 그렇게 능청스럽게 잘해요? 
아, 봤어요? (웃음) 사실 저는 더 하고 싶어요.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샘은 죽은 와중에서도 유머러스한 캐릭터거든요. 그래서 고민이 되는 거예요. 이게 과연 한국인의 정서에 맞을까 싶은 거죠. 관객들이 봤을 때 ‘여자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왜 이렇게 태평해?’ 그럴 수도 있거든요. 이게 외국 정서에는 잘 맞는데, 한국 사람들한테는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어서 반응 보면서 하는 중이에요.

 
(TV 드라마) <굿 닥터> 끝나고 바로 뮤지컬에 들어갔는데, 몰입은 잘 됐어요? 
몰입은 되는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잘 안됐죠. 바로 전날까지 시온이로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억지로 빨리 바꿔야지 하는 건 아니었어요. 연습 기간이 길었으니까 그 사이에 충분히 바뀔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시온이의 행동들이 나올 때가 있어요. (오른쪽 손가락을 보며) 지금 이런 손가락 모양 같은 것들이요.

 
한창 작품도 많이 들어오고 중요한 시기인데 뮤지컬을 선택한 이유가 뭐예요? 
예전에 어떤 분이 저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똑같은 돈 주는데 드라마, 영화, 뮤지컬 하면 뭐할래?” 그때 저는 “뮤지컬 할래” 그랬어요. 특출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재밌어요. 그리고 뮤지컬 하면 잠은 잘 수 있잖아요. (웃음) 그런 큰 장점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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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고스트>

 
아이비씨는 인터뷰했을 때, 회사 정직원으로 취직한 것 같다고 좋아 하더라구요. 
아이비 누나 매니저는 아이비 누나가 평생 뮤지컬만 했으면 좋겠대요. (웃음) 물론 뮤지컬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에너지 소모가 크고 대중한테 노출되는 게 적지만 배우로서는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자부심도 느껴지구요. 내가 더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무대에서 얻는 게 정말 많은가 봐요. 
(정)웅인이 형이 해마다 연극을 했었거든요. 그때 제가 형한테 정말 멋있다고 했어요. 방송하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그런 걸 다 포기하고 하는 거니까. 가족이 있는데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쉽지 않은 거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우로서 다짐을 지키려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도 빨리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데뷔하고 나서 계속 작품을 하고 있는데, 쉬고 싶진 않아요?
쉬고 싶긴 한데, 놀아 본 사람이 논다고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웃음) 제가 얼마 전에 하루 종일 집에 있었거든요. 처음으로 진짜 오랜만에 뒹굴뒹굴했어요. 근데 할 게 없는 거예요. 영화 촬영으로 밤새고 10시쯤 집에 들어와서 자다가 시간이 아까워서 3시에 일어났는데 그 다음부터 할 일이 없더라구요. 속으로는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했는데, 막상 쉬게 되면 뭘 할지 정해 놓고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쉴 때 뭘 할지 몰라서 작품을 계속 하는 배우들도 있더라구요. 그럼 주원씨는 뭐할 때 재밌어요? 
저는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아요. 아무리 재밌어도 막 업 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음… 요즘은 술자리가 좋아요. 술은 잘 안 마시는데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모든 공연이나 행사가 끝나면 같이 고생한 사람들끼리 있는 그런 자리. 그때도 말은 별로 안 하는데 그냥 여기저기서 하는 얘기를 듣는 게 재밌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것의 재미를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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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하면 대박. 홈런을 못 치면 적어도 안타는 치는 배우. 근데 그가 던지는 공들이 직구가 아닌 변화구들이라는 게 놀랍다. 악역의 탈을 벗어 던지고 대신 쓴 (TV 드라마) <각시탈>은 주원이 처음 맡은 주연작으로 다소 무거운 소재의 드라마이기도 했다.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알린 지 2년 만의 일이다. 특히 <굿 닥터>의 자폐증을 앓고 있는 박시온 역할은 주원이라는 배우를 다시금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애를 앓고 있는 캐릭터라 잘못하면 비호감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에 무엇보다 진정성이 중요했다. 그 인물을 이해하지 않고 머리로 연기하려 했다면 아마 그 가식적인 마음을 먼저 느낀 건 대중보다 배우 자신이었을 것이다. 점차 성장해가는 박시온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진짜 주원이 아니면 못 해’  

 
# 변화무쌍하게 도전하는 로또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골라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거 해요. 남들 눈에는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그냥 해요. 내가 재미 없는 건 애정이 없거든요. 싫어하는 작품을 하게 되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요. 그냥 읽어 보고 내가 재밌는 걸 하고 정이 가는 작품으로 골라요. 연기자로서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면 더 좋구요.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트렌디한 작품을 하다가도 가끔씩 정말 어려운 것들을 하나씩 하더라구요. 
아, (영화) <패션왕>은 사실 그래서 한 것도 있어요. 지금 아니면 못 하는 역할이거든요. 제 역할이 고3인데 지금의 저랑 10살 차이가 나요. 만약 시간이 지나서 교복 입으면 난리 나겠죠?

 
지금 10살 차이는 거뜬한가요? 
머리를 어리게 하니깐 그 모습이 나오는 거 같아요. 노안 고등학생인가? (웃음)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겠네요. (웃음) 아무래도 안 했던 캐릭터를 해보는 게 재밌긴 하죠. 
아마 배우라면 모든 캐릭터의 연기를 다 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막상 하려고 보면 어려우니까 선택을 못 하는 거죠. 근데 오래 연기를 하려면 한 가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그게 되게 어려운 거거든요.   

 
뮤지컬, 드라마, 영화, 예능까지 모든 장르를 다 하고 있는데 딱 굳어진 캐릭터가 없어요. 그건 배우로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마흔 살까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정해지는 게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정해지잖아요. 외국 배우들 보면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를 하는데 그런 걸 보면 부럽죠. 시스템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넘나드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외국의 멜로는 슬픈 것도 있지만, 예쁜 것들도 많은데 우리나라 멜로는 전부 우는 거잖아요. 우선은 확실히 캐릭터가 정해지지 않은 걸 지키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특별히 하고 싶은 역할이 있어요? 
원래는 어려운 게 하고 싶었어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처럼 끝과 끝을 넘나드는 것들. 근데 얼마 전부터 바뀌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밥 먹었어?” 이 대사가 너무 어렵다는 걸 안 거죠.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잘 안돼요. 일상적인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요. 이번에 <패션왕> 할 때도 감독님이 연기를 안 하게 하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연기 안 하는 척을 하고 있죠. (웃음) 

 
작품을 다작하게 되면 대중들한테 너무 익숙해질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신경 안 쓰여요? 
글쎄요.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가 지겹…나? 

 
(웃음) 지겹다기보다는 너무 익숙해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럴 수도 있는데 제가 다른데 나와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거잖아요. 아, 근데 이게 그렇더라구요.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2>(이하 <1박 2일>)을 막상 관두니까 팬들이 되게 보고 싶어해요.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없는 거잖아요. 방송할 때도 팬들이 <1박 2일> 하고 연기할 때 모습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거니까… 덜 질려 하겠죠? (웃음) 근데 지금은 많이 해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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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굿 닥터>

 
주원에게 혜성같이 등장했다는 말을 많이 해요. 갑자기 스타가 돼서 신기하기도 했어요? 
신기했죠. 4년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에서만 활동하던 배우였는데 <제빵왕 김탁구> 때문에 더 많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니까요. 예전에는 뮤지컬 끝나면 팬들 만나서 악수하고 수다 떨다가 집에 가고 그런 게 일상이었어요. 그러다가 TV에 나오는 나를 봤는데 나 같지 않은 거예요. 근데 이건 지금도 그래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소리 지르고 그러는데 ‘왜 날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이 생각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겠는데 계속 신기할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저를 알고 공연 보러 오고 그런 거 보면 놀랍죠.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TV에 나오는 사람이니까…

 
TV에 나오는 사람은 많아요. (웃음) 
음… 크게 꾸며지지 않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친근하다고 해야 하나. 이건 <1박 2일>의 영향도 크겠죠. 뭔가 베일에 싸인 모습이 아니라 <1박 2일>에서 보던 모습이 있는 거니까. 그 프로그램할 때 저는 진짜 다 놓고 했거든요. 좋아하는 형들이어서 가식 없이 행동하려고 노력하기도 했구요. 그런 점이 친근하게 다가간 것 같아요. 그런 거 있잖아요. TV에 나오는 사람인데 정이 가는. 

 
근데 또래 배우들 보면 거친 카리스마가 있는 남자 캐릭터를 하고 싶어 하고, 또 많이 해요. 근데 주원씨는 굳이 멋있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건 맞아요. 멋있는 척도 좀 해야 되는데 지금은 잘 안 되나 봐요. 나이 들면 되려나. (웃음) 지금도 그런 작품이 들어오긴 하는데 하면 할 수는 있겠죠. 근데 억지로 쥐어짤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거죠. 30대가 되면 겉으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안에서 나오는 멋이 생길 것 같아요. 그때 정말 멋진 거 하고 싶어요. 그냥 지금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년 같은 캐릭터를 했을 때 빛을 발하는 걸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제가 사실 어른스럽지 못하고 오히려 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 보니까 그런 연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죠. 또 보는 사람도 그렇구요. 걱정이에요. 40대 돼서도 이럴까봐. 

 
그때도 그러면 캐릭터 되겠네요. (웃음) 
그렇죠. 특히 남자는 쉽게 안 변하잖아요. 요즘 더 느끼지만, 남자들은 진짜 안 변하는 거 같아요. 커도 똑같고~ (웃음) 근데 그때는 주름이 생기잖아요. 저는 예전부터 알 파치노(Al Pacino)랑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의 주름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거 하나로 모든 게 다 설명되잖아요. 저도 세월이 지나면 변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빵왕 김탁구> 때처럼 악역 연기를 다시 해보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어요. 아, 요즘 TV에서 탁구가 해서 엄마가 보시더라구요. 근데 진짜 웃겨요. 지금의 내가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만약 한다면 그때처럼은 안 할 거예요. 물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겠지만, 더 제대로 된 악역을 해보고 싶더라구요. 진짜 센 거.   

 
높낮이에 상관없는 물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주원과의 인터뷰 또한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와의 인터뷰는 사실, 일방적인 질의응답의 느낌보다는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대화에 가까웠다. 인터뷰하는 에디터 외에도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는 스탭들은 즉석에서 질문을 이어갔고, 그 질문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인터뷰에 감칠맛을 더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주원과 스탭들의 관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물 흐르듯 인터뷰가 진행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출처: FOUND

▲ 기사 URL http://foundmag.co.kr/337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