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천구백팔십년 광주 오월 어느 밤. 그 밤 이후

작성자김은별 날짜2015.05.16 조회2980 추천0
공연명푸르른 날에
 
※ 이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싫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매년 보는데 볼 때마다 이렇게 새롭게 더 많이 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연극을 막 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연극이었어요. 매년 봄이 되면 연뮤 관련 커뮤니티에 "오월이 됐으니 푸르른 날에를 보러 가야겠다"는 글이 올라오곤 했는데, 그래서 어떤 극인지 정말 궁금했던 작품이기도 하구요. 포스터와 시놉, 그리고 (스포를 포함하지 않은) 간단한 감상들을 쭉 훑어본 결과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극이라는 것, 손수건을 꼭 지참해가야 한다는 것 정도의 정보만을 얻은 채 첫 관람을 했었습니다.

사실 첫 관람에서 느꼈던 건.. 감동보다는 당혹스러움에 가까웠습니다. 소재와 후기에서 제가 각오했던 것과는 굉장히 다른 톤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그게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뭐랄까.. 80년대 성우들이 더빙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아아닛↗" "너무하세요 흑흑"하는 책을 읽는 듯한 대사톤과 과장된 제스춰가 너무x3 거슬리는 겁니다. 원래 그런 톤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아예 처음부터 그런 식의 진행인 걸 알고 갔으면 모를까 저는 굉장히 진지하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고 갔거든요. 그래서 앞부분은 집중이 잘 안 됐어요. 물론 뒤로 갈수록 그런 전개에도 익숙해지고, 톤 자체도 점점 다운되면서 괜찮아졌지만, 처음 느낀 당혹감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재관람부터는 다릅니다. 이 작품이 어떤 톤으로 전개되고, 어떤 시선으로 관객을 대하는지 알고 나니까 오히려 그때부터 더 작품을 잘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의 삶
주인공 오민호는 아마 지금의 딱 우리같은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 배울 만큼 배워서 머리에 든 건 있고, 그렇지만 항쟁이라는 부담스러운 행동에서는 은근슬쩍 한발을 빼고 싶고, 맞는 것도 싫지만 그렇다고 때리는 것도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개죽음당하는 것도 싫은데 또 그걸 막기 위해 뛰어들기엔 무섭고.. 아마 지금 서울에서 광주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면 우리들 대부분은 오민호처럼 행동할 겁니다. 순수하게 정의롭기엔 우리는 이미 어설프게 머리에 든 게, 손에 쥔 게 많은 사람들이거든요. 손에 총을 들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옳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내가 중요하고 내 사람들이 중요하고 내 인생이 중요하죠.

<푸르른 날에>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이 극은 그렇게 '정의롭지 못했던' 청춘이 5.18 항쟁을 계기로 민주화투사로 거듭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청춘의 눈앞에서 스러져갔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지금 우리 모습을 각성하라고 호소하는 이야기도 아니구요. 광주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은 대개 1980년 5월 그날,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나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총을 들고 시청을 지켰던 사람에 집중합니다.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평범하고도 위대한 사람이었는지 말하는 거예요. 하지만 <푸르른 날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에 집중합니다. 그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은 고통에 대해서 말해요. 오민호처럼 적당히 한 발 빼고 있었던 비겁한 사람이라도, 친구를 팔고 변절을 해서 고문에서 살아나온 사람이라도, 그날이 할퀸 상흔이 공평하게 남겨집니다.

친구를 '빨갱이'라고 고발하는 문서에 도장을 찍고 민호가 고문실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날 광주에 함께 있지 않았던 관객들로서는 민호를 손가락질 하기 어렵습니다. 개처럼 끌려다니고 비인간적으로 물고문을 당하는 걸 본 직후라 더욱 그렇죠. 하지만 민호는 스스로를 손가락질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내가 한 일은 정당했다고 아무리 핏대를 세워 이야기해봤자 기준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건 민호의 자책감이 불러낸 환상이니까요. 내가 한 짓이 부끄럽고, 부끄럽지 않다고 소리쳐봤자 부끄럽고, 정혜에게 부끄럽고 세상에 부끄럽고 나에게 부끄럽고, 그래서 화가 나는데 화를 내봤자 달라지지 않는 걸 알아서 더 죽을 것 같고.. 그렇게 민호는 미쳐갑니다.


그저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민호만이 그날의 유일한 생존자는 아닙니다. 미쳐가는 민호 옆에서 묵묵히 참고 견디던 정혜 역시 생존자이긴 마찬가지죠. 비록 그날 시청에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혜 역시 '그날' 광주에 있었습니다. 세상 천지 하나뿐인 핏줄을, 동생을 잃었어요. 그리고 이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녀가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자 했던 그 남자도 서서히 미쳐갑니다. 정혜가 견뎌야 하는 고통 역시 민호가 겪어야 하는 고통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아요. 그래서 민호 옆에서 때리면 맞고 밀어내도 꿋꿋하게 곁을 지키던 정혜가 "너 때문이야!" 하며 민호가 패악을 부릴 때 무너져 내리는 게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꾹꾹 눌러참던 슬픔이, 고통이 임계점에 다다라 넘쳐흐르는 느낌이거든요. "...그럼 나는 어떡해요? 이제 남은 사람은 민호씨밖에 없는데.. 나 때문에 아프다고 하면, 나 때문에 기준이가 보인다고 하면 도대체 난 어떻게 해요?!!!!!"하고 울부짖을 때의 정혜 표정은 정말 가슴에 쿡쿡 박히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멀어집니다. 서로 핥아주고 보듬어 안고 가기에는 상처가 너무나 거대합니다.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고 싶은데, 평생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상대로 인해 '거기 상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늘 환기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습니다. 피가 멎고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나지... 않아요. 왜냐면 늘 들여다보게 되니까요. 늘 생각하게 되니까요. 늘 자책하게 되니까요. 머릿속에서 날마다 되풀이되니까요. 그렇게 영원히 살게 될 테니까요. 날마다 상처 위에 다시 생채기를 내는 사람들의 고통을 우리가 감히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민호가 '출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입밖으로 꺼낼 때, 관객들은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정에 항의하고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정혜뿐이에요. 합장하는 손을 연신 쳐내리며 눈물과 절망으로 가득차있던 정혜의 그 얼굴, 그 목소리는 아마 <푸르른 날에>에서 가장 가슴아픈 순간일 겁니다. 그런 정혜마저도 결국 민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죠. 사실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가요? 자기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내버려두고 나홀로 출가를 하겠다고 나서는 남자라니.. 하지만 민호에게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만약 민호가 출가를 하지 않고, 속세의 인연을 끊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민호는 결국 죽었을 겁니다.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예요. 민호는 죽지 않기 위해 떠난 겁니다. 살기 위해, 그래도 살아야 하겠어서.


엎어진 곳에서 짚고 일어나라
하지만 민호가 여산이 되었어도 그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속세의 인연을 끊는다는 명목으로 뚜껑을 덮어두고 모른 척 했을 뿐, 여산은 지금도 언제나 민호입니다. 결코 벗어나지 못한 도돌이표처럼 늘 정혜를 생각하면 죄스러워지고, 그날을 떠올리면 괴로움이 밀려오고, 운화―언제나 그리워했을 자신의 딸―를 생각하면 애가 끓죠. 그는 아직도 30년 전 그날에 멈춰서 있는 겁니다. 죽지 않기 위해 모든 감정을, 생각을, 관계를 Stop시켜버린 것 뿐이에요. 그리고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 딸 운하의 청첩장을 받고 나서야 겨우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여산이 운화의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시켜주는 그 순간, 오민호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여산'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운화의 존재를, 기준의 죽음을, 자신의 변절을, 그저 없었던 일처럼 덮어두고 공염불만 외우며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해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계속해서 기억하고 아파하고 부끄러워하고 인정하고 반성하고.. 그렇게 끊임없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민호는 정말로 고통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 시작이 운화의 손을 잡는 거였던 거구요.

개인적으로 마지막 엔딩은 역대급으로 완벽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운화의 베일을 가져다 곱게 젊은 정혜의 머리에 꽂아주던 젊은 민호와, 주변에서 떠들석하게 자리를 채우던 시민들, 그 속에 마주보던 젊은 민호와 젊은 정혜... 그들은 그렇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어느 날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다 온통 축하인사들로 넘쳐나는 하객들을 맞이하는 오월의 어떤 푸르른 날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 '맞이할 수도 있었던' 언젠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너무도 서러워서, 언제나 그 장면에서 눈물이 터지고 맙니다. 세상에는 정말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존재하고, 그것이 천구백팔십년 오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그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돼요.


덧붙인 주절거림
학살2는 정말로 엄청난 시라고밖에 표현이 안되네요.
모든 배우들이 한구절 한구절 읊을 때마다 그날 광주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너무나 또렷하게 그려져서 소름이 끼쳐요. 아마 <푸르른 날에>를 보러올 대부분의 관객들이 상상했을 막연한 극 분위기를 학살2을 다함께 낭송하는 장면에서 보여줍니다.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굉장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하이라이트 장면이기 때문인지 인터넷에서도 이 장면만 잘라서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현장에서 볼 때가 3배 정도는 더 엄청나니 혹시 못 보신 분들은 꼭 보러 가시길 추천합니다. 극장안을 흐르는 숨소리조차 고요한 그 몰입감과 발을 쾅쾅 구를 때 좌석까지 전해지는 그 떨림까지 느껴야 그 장면이 정말 제대로 확 느껴지거든요. 매년 그 장면에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다른데, 올해에는 화염병을 든 여고생이 눈에 밟히더라구요. 손에 그런 것을 쥐고 있으면 안되는 나이인데, 화염병 대신 책을 들고 있어야 하는 나이인데. 어른들이 못나서 저렇게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구나. 그리고 거리에서 화염병을 손에 들고 죽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산예술센터의 시야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어느 좌석에서든 잘 보인다는 말은 허튼 말이 아니더라구요. 보조석을 제외하고 제일 뒷줄인 9열 약간 사이드에서 봤었는데, 정말 시야방해 하나도 없이 잘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무대를 좀 깊이 쓰는 편인데도 막상 별로 멀게 느껴지거나 표정이 안 보인다 싶은 장면도 하나도 없었어요. 돌출형 무대인데 이 정도라니.. 정말 대단해요bb 다만 뒤쪽으로 갈수록 아무래도 연극이다 보니 소리는 좀 작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앞열에 비해서 아쉽다는 거지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합니다~

열심히 후기를 쓰긴 썼는데.. 어차피 전석 매진이라 자리가 없네요. 너무 뒤늦게 영업후기를 쓴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ㅋㅋ